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하루키

이 책의 기본 정보 안내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역자 김난주
출판 비채
출간 2020.10.16


책을 소개해요


처음으로 털어놓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간들
아버지의 시간에서부터 조심스럽게 쌓아올린 단 하나의 서사
그간 일본 문학 특유의 사소설풍 서사와는 다소 거리를 두어온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사적인 테마 즉 아버지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제목 그대로 아버지와 바닷가에 고양이를 버리러 간 회상으로 시작하는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유년기의 입양과 파양, 청년기의 중일전쟁 참전, 중장년기의 교직 생활, 노년기의 투병 등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 개인의 역사를 되짚는 논픽션이다.
이를 통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존재론적 근간을 성찰하고 작가로서의 문학적 근간을 직시한다. 작가는 시종 아무리 잊고 싶은 역사라도 반드시 사실 그대로 기억하고 계승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리고 자랑스럽지만은 않은 아버지의 역사를 논픽션이라는 이야기의 형태로 용기내어 전한다. 글 쓰는 사람의 책무로서.
이 책을 읽으면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첫머리에 등장하여 일 년 가까이 행방불명되었다가 다시 돌아온 고양이 와타야 노보루는 물론, 산 사람 가죽 벗기기 등 소설 속 잔인한 풍경들이 작가의 삶의 조각에서 비롯되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중국행 슬로보트》라는 작품의 출발점도 《후와후와》의 보드라운 회상이나 《기사단장 죽이기》 속 난징전 에피소드도 마찬가지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들은 물론, 직간접적으로 식민지의 아픈 역사를 경험한 한국인이라면 더더욱 누구에게나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일 것이다.
제공 인터넷 교보문고


무라카미 하루키는요...


1949년 교토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연극과에서 공부했다.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했고, 1982년 《양을 둘러싼 모험》으로 ‘노마 문예신인상’을, 1985년《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로 ‘다니자키준이치로상’을 수상했다. 1987년에는 현재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을 발표하여 하루키 신드롬을 낳았다. 1994년 《태엽 감는 새 연대기》로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했고, 2005년 《해변의 카프카》가 아시아 작가의 작품으로는 드물게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2006년 체코의 ‘프란츠카프카상’을, 2009년 이스라엘 최고 문학상인 ‘예루살렘상’을, 2011년에는 ‘카탈루냐 국제상’을 수상했다. 전세계 45개 이상의 언어로 50편 이상의 작품이 번역 출간된 명실상부한 세계적 작가로, 2009년에는《1Q84》로 제2의 하루키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또한《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등 ‘무라카미 라디오’ 시리즈를 비롯해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시드니!》《무라카미T》 등 개성적인 문체가 살아있는 에세이 역시 소설 못지않은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과 함께한 《후와후와》, 카트 멘시크의 그림과 함께한 《버스데이 걸》, 이우일의 그림으로 선보인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 등 늘 다채로운 시도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제공 인터넷 교보문고


기억에 남는 책 속 구절들..

아버지와 나는 고로엔 해변에 고양이를 내려놓고 안녕이라 말하고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전거에서 내려 '불쌍하지만 어떨 수 없었어' 하는 기분으로 현관문을 드르륵 열었는데, 조금 전에 버리고 온 고양이가 "야옹" 하면서 꼬리를 세우고 살갑게 우리를 맞았다. 우리보다 앞서 집에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돌아올 수 있었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곧장 집으로 왔기 때문이다. 아버지 역시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참이나 둘이 아무 말을 못 했다.
그에게 물은 적이 있다. 누구를 위해서 독경을 하는 것이냐고. 그는 말했다. 전쟁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전쟁에서 죽은 동료 병사와 당시에는 적이었던 중국인들을 위해서라고. 아버지는 그 이상은 설명하지 않았고, 나도 그 이상은 질문하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고, 또 역사라는 것도 그렇다. 본질은 '계승'이라는 행위 또는 의식 속에 있다. 그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사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지금도, 지금에 이르러서도, 아버지를 줄곧 실망시켰다. 기대를 저버렸다 하는 기분을 - 또는 그 잔재 같은 것을 - 품고 있다. 어느 정도 나이를 넘어서부터는 ‘사람은 각자 개성이라는 게 있으니까, 뭐’ 하고 떨어버릴 수 있게 되었지만, 십대의 내게는 어느 모로나 그다지 마음 편한 환경이랄 수 없었다. 거기에는 언제나 막연한 가책 같은 것이 따라다녔다.
학교 수업은 대부분 따분했고, 그 교육 시스템은 너무도 획일적이며 억압적이었다. 그렇다 보니 아버지는 내게 만성적인 불만을 품게 되었고, 나는 만성적인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그 추억은 아직 어린 내게 생생한 교훈을 남겨주었다. '내려가기는 올라가기보다 훨씬 어렵다' 하는 것이다. 보다 일반화하면 이렇게 된다-결과는 원인을 꿀꺽 삼켜 무력화한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고양이를 죽이고, 어떤 경우에는 사람도 죽인다.
오래전부터,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언젠가는 문장으로 정리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좀처럼 시작하지 못한 채 세월이 흘러갔다. 가족에 대해 쓴다는 것은(적어도 내게는)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고, 어디서부터 어떤 식으로 쓰면 좋을지 그 포인트가 잘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그 짐이 내 마음에 오래도록 자리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자녀와의 관계에 대해...


자식은 부모를 어떻게 기억할까? 시간이 꽤 흘렀지만 어떤 장면들은 사진처럼 선명하고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소소하게 행복했던 기억들도 있으나 보통 그런 장면들은 꽤 충격적인 사건들이다. 보통 너무 행복했거나 좋았거나 놀랐거나 무서웠거나... 이런 일들이다. 나의 뇌리에 박혀 있는 장면들을 부모님께 물으면 정작 그들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이 있다. 나는 너무 행복했는데 부모님에겐 평범한 날이었거나 나는 너무 슬펐는데 부모님은 별 일 아니었거나... 서로의 행복과 충격의 기준이 달랐을것이다.
이제 부모가 된 나는 자식에게 어떤 기억을 남겨주게 될까? 아이 평생에 남을 기억은 어떤 장면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행복한 기억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단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아버지와 아들의 책이다. 부모와의 관계가 좋을 수 많은 없다.
아버지는 공부를 무척 잘했지만 하루키는 학업에 큰 흥미가 없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그런 갈등으로 인해 결혼 후 20년 이상을 연락하지 않고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가족처럼 가까운 존재도 없는데 가족처럼 마음을 아프고 불편하게 하는 존재도 없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들이 많을것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더 배려하며 아껴야... 오래도록 소중한 관계가 되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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