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세이) 오래 준비해온 대답 - 김영하

기본정보

저자 김영하
출판 복분서가
출간 2020.04.29.


책 안내

10년 만에 다시 돌아온 김영하의 본격 여행 산문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소설가 김영하가 10여년 전 시칠리아를 여행하며 보고 느낀 것을 생생히 담아낸 책이다. 2009년 첫 출간 당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를 새로운 장정과 제목으로 복복서가에서 다시 선보인다. 이번 개정 작업을 통해 작가는 문장과 내용을 가다듬고 여행 당시 찍은 사진들을 풍성하게 수록하였다. 초판에는 실려 있지 않은 꼭지도 새로 추가하여 읽는 재미를 더했다. 2007년 가을, 지금은 장수 여행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한 EBS 〈세계테마기행〉의 런칭을 준비하던 제작진이 작가 김영하를 찾아왔다. 그들이 작가에게 어떤 곳을 여행하고 싶냐고 물어보았을 때, 김영하는 ‘마치 오래 준비해온 대답’처럼 시칠리아라고 답한다. 당시 한국예술종합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던 작가는 그들과 함께 시칠리아를 다녀온 후, 교수직을 사직하고 서울의 모든 것을 정리한 뒤 다섯 달 만에 아내와 함께 다시 시칠리아로 떠난다. 그것은 밴쿠버와 뉴욕으로 이어지는 장장 2년 반의 방랑의 시작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도착한 시칠리아에서 그는 왜 그곳이 ‘오래 준비해온 대답’처럼 떠올랐는지 깨닫는다.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다정하게 다가와 도와주고는 사라지는 따뜻한 사람들, 누구도 허둥대지 않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삶, 장엄한 유적과 지중해. 그곳에서 작가는 자신을 작가로 만들었던 과거를 떠올리고(“어두운 병 속에 가라앉아 있는 과거의 빛나는 편린들과 마주하는 고고학적 탐사”), 오랫동안 잊고 있던 자기 안의 ‘어린 예술가’도 다시 만난다. 제공 교보


좋았던 구절

늙은이들은 걱정이 많고 신중하여 어디로든 잘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육신과 정신을 이제는 아주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반면 젊은이들은 자신의 취향도 내세우지 않으며 낯선 곳에서 받는 새로운 감흥을 거리낌 없이,
아무 거부감 없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과 인생에 대해 더 이상 호기심을 느끼지 않게 되는 과정이다.
호기심은 한편 피곤한 감정이다.
우리를 어딘가로 움직이게 하고 무엇이든 질문하게 하고 이미 알려진 것들을 의심하게 만드니까.


나는 한순간의 만족을 위해 사들인, `너무 오래 존재하는 것들`과 결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서 축적하는 삶이 아니라 모든 게 왔다가 그대로 가도록 하는 삶.
시냇물이 그러하듯 잠시 머물다 다시 제 길을 찾아 흘러가는 삶.
음악이, 영화가, 소설이 내게로 와서 잠시 머물다 다시 떠나가는 삶.
어차피 모든 것을 기억하고 간직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냐.

훌륭한 인간이란 많은 것을 소유한 자가 아니라 많은 것이 잘 지나가도록 자신을 열어두는 사람이다.
하나의 사상이나 나라는 필터를 거쳐 한 권의 책이 되고 한 곡의 음악이 나라는 필터를 거쳐 아름다운 문장이 된다. 이럴 때 나의 힘은 더욱 순수하고 강해진다. 모든 것이 막힌 것 없이 흘러가며 그 과정에서 본래의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을 생성하게 될 때, 인간은 성숙하고 더욱 위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을 것 같은 평온한 하루,
걱정들은 종일토록 잠복해 있다가 밤을 틈타 우리를 내습한다.
서울에 남겨놓고 온 것들,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꿈을 빌려 나의 밤을 괴롭힌다.


글쎄, 산 위에는 뭐가 있었을까? 나는 그런 것들을 주절주절 이야기했고 카메라에 담아온 이미지들을 보여주었다. 아내는 별다른 감흥이 없는 눈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떤 풍경은 그대로 한 인간의 가슴으로 들어와 맹장이나 발가락처럼 몸의 일부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가볍게 전해줄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다. 풍경의 장엄함도 우리 몸 어딘가에, 그 자체의 생명을 가진 채 깃든다고 믿는다.

부인, 천천히 하시지요. 날이 덥습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아내와 나는 힘든 일을 당하며 낙심할 때마다, 혹은 당황하여 우리 중 누군가 허둥댈 때마다 그 멋쟁이 사장의 느긋한 대사를 서로에게 들려주었다.
이탈리아 원어로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은 간결하고 산뜻한 표현이 된다.
"Signora, prego. Ecaldo"
우리는 마법의 주문처럼 이 말을 외우고 그럴 때마다 거짓말처럼 다시 인생에 느긋한 태도를 되찾을 수 있었다.

가이드북을 보니까 이탈리아에 이런 속담이 있대.
사랑은 무엇이나 가능하게 한다.
돈은 모든 것을 이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그리고 죽음이 모든 것을 끝장낸다.
"그러니까 여행을 해야 된다는 거야"

"결론이 왜 그래?"
"결론이 어때서?"
우리 말고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잡담이 거센 바닷바람에 풀어지는 사이,
시칠리아 섬은 우리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독서 후 나의 감상

내 취미이자 나의 힐링은 여행이다. 고단한 일상의 짐을 잠시라도 가볍게 해주는 맛에 중독되어 한가한 시간이면 여행지를 탐색하는 것이 직장생활 중 유일한 낙이었다. 코로나 시국에 접어들어 해외여행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고 국내여행도 편치 않은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다니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이 더 힐링으로 다가왔다.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 시칠리아의 모습이 머릿속에 펼쳐져서 같이 여행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내와 시장에서 갓 잡은 해산물을 사서 요리를 만들고 차를 마시고 하는 평범한 장면조차 장소가 시칠리아 면 영화가 되는 것 같은 느낌?! 작가님이 글에 이 글을 읽은 당신은 언제가 시칠리아에 있을거라고 했는데 내가 그러지 않을지...
작가분이 생각하는 아내는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미리 걱정을 좀 해놔야지 직성이 풀리는 성향이라고 했는데 이 대목이 딱 나 같다고 느껴져서 뜨끔했다. 가끔은 잠시 그대로 두면서... 한 템포 여유를 갖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듯하다. 계획 없이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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